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더불어 행복하게 사는 길
조그만 연못에 금붕어 두 마리가 정답게 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두 마리의 금붕어는 심하게 서로 다투게 되었고 급기야는 물고 뜯으며 싸우고 또 싸웠다.
“저놈만 죽으면 이 연못은 나의 영원한 천국이 될 거야”하면서 그렇게 상대방을 죽이는 처절한 전쟁을 날마다
계속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한 마리가 물 위에 떠올랐다. 그러자
나머지 한 마리의 금붕어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평안의 천국을 꿈꾸었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그 금붕어마저도
죽어 물 위에 떠오르고 말았다. 먼저 죽었던 금붕어가 썩어 악취를 발하며 조그마한 연못을 온통 오염시키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해가 바뀌고 새해가 왔다고 해서 모든 것이 저절로 새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새해를 만드는 주체가
바로 우리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심성과 마음이 바뀌지 않는 한 결코 새로운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조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부패척결이니 부정부패 일소니 하면서 사정의 칼날을 날카롭게 세웠지만 그 정부가 새로워진 역사는
아직도 없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들에게도 새해는 있었고 그들 나름대로의 새 정부의 철학은 있었다. 그러나 변화의 역사는커녕
오히려 더욱 부패시켜 역사를 추하게 후퇴시키고 말았다. 그 세력의 실체가 변화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좌절하지 않고 새해에 또 다시 기대를 가져 볼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악한 사람이라도 마음을 새롭게
변화시킬 수 있고 또한 변화가 가능하다는 사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위스의 교육 개혁자 페스탈로치(1746~1827)는 “고아를 포식시키기는 어렵다. 그들의 위는 허공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정신만은 충만시킬 수 있다”고 가능성의 길을 제시했다.
그렇다. 우리는 이제 변화되어야 한다. 이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고, 우리가 공존하고 있는 이 사회를
위해서도 그렇다. 우리 모두는 더불어 사는 사회적인 동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누구도 고아의 공허한 배와 같은 인생들의 허망한 욕심을 다 만족시킬 수는 없다.
하지만
마음이 변화되면 작은 것에서도 행복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새해를 맞아 우리 모두가 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이 있다. 그것은 바로 우리 행복의 실체인 마음을 바꾸는 일이다. 1세기를 전후하여 참으로 위대한 삶을 살았던 사도 바울은 그래서 이렇게 권면하고 있다.
“너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말이다. 남을 위해
목숨을 버린 예수님의 마음은 날마다를 새해와 천국으로 만드는 가장 복된 마음이다. 그 분의 마음에는
항상 행복이 담겨 있고, 그 행복은 그 분이 떠나고 난 2,000년이
지난 지금에도 뭇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드는 놀라운 힘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사람들의 가치가 오로지 외형에만 머물고 있다. 좋은 집, 좋은
차, 아름다운 외모, 풍부한 재물 등에 말이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와 같은 외형만 따라서 결혼을 한다.
과연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오래 가겠는가? 과연 풍부한 것이 얼마나 오래 머물겠는가?
옛말에 “영원한 부자도 영원한 가난뱅이도 없다”고 했다. 공감이 가는 말이다. 진짜 아름다운 사람은 외형적인 것보다 내면적인데 있음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조선일보에 게재된 기사 하나가 오늘 우리들의 마음에 도전을 주고 있다. 젊은 청년이 중국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짜장면을 배달하고 있었다. 그릇을 찾으러 갔는데 깨끗이 씻어 놓은 그릇 위에는 “잘
먹었습니다^^.”는 메모와 함께 1,000원짜리 지폐 한
장이 놓여 있었다.
그러자 그 아르바이트생은 “감사합니다. 더욱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이와 같은 분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는
메모를 남겼다고 한다.
이것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하지만
누구나 하지 못하기 때문에 신문에까지 나오지 않았을까?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실 때 혼자서 살도록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남자를 만드시고 혼자 독처하는 것이 아름답지 않아 여자를 만들어 남자에게 주시고 그들을
통해 자녀들이 태어나게 하심으로 가정과 사회와 국가가 구성되게 하셨다.
다시 말해 사람은 더불어 살
줄 알고 더불어 행복할 줄 알아야 멋들어진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조금만 더 마음을 비우고
따뜻한 손을 내밀면 어렵지 않게 우리 모두 이렇게 마음을 나누며 더불어 행복을 누릴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삭막한 이민생활에 이와 같은 훈훈한 사랑의 봄바람이 시원하게 불어 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