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칠곤 목사(크릭사이드 한인교회 담당)
예수님의 3가지 직분-제사장(3)
인간이 세상에 살면서 행복이라면 ‘나의 존재’가‘우리의 공동체’에서 일어나는 즐거움ㆍ기쁨ㆍ고통과 슬픔을 누군가와 함께 공유하는 울타리 안에
거하는 것이다.
이 울타리가 되는 토대는 가정인데 그곳에는 나를 낳아준 부모와 형제 그리고 나와 한 몸을 이룬 아내와 자식들이 존재한다.
이러한 가정 공동체에서 볼 수 있는 사랑은 ‘내리사랑과 치사랑’이다. 내리사랑은 손윗사람이 손아랫사람에게 베푸는 사랑이고 치사랑은
손아랫사람이 손윗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의 사랑의 관계 속에서 주어지는 속담이 있는데
그것은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
이 말은 사랑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이며 자식은 부모가 보여준 무조건적인 희생과 헌신을 부모에게 결코 보답할 수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부모도 인간이기에 자식이 성장하여 직장을 잡고 안정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볼 때 행복감을 느끼지만 마음의
한쪽 구석에는 자식으로부터 대접을 받고자 하는 기대감을 가지게 된다. 그런 가운데 부모는 자식이 기대하는
바에 부응하지 못하게 되면 뭔가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된다.
그리고 자식과 함께 한 몸을 이루고 사는 며느리가 왠지 모르게 미워지고 자신이 어렵고 힘든 과정 속에서 자식만을 위해 살아온 삶에 대해
후회를 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을 한없이 아끼며 무덤에 들어가기 이전까지 눈물로 자식의 건강과 안전 그리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부모는 바란다.
이것은 아가페 사랑이며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독생자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어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하시고 주님을 죽음에서 사흘 만에 부활하게 하시어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신다.
주님이 죄악된 세상에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신 것은 하나님이 예수님께 부여하신 제사장 직분을 수행하시기 위한
것이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이사야53:5)
만물의 근원이 되시고 창조자되시는 하나님은 아담의 불순종으로 인한 인간의 원죄(原罪)의 문제와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중보자로 삼으셨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요 또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중보자도 한 분이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디모데전서 2:5)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은 구원을 받고 인간의 연약성으로 인한 자범죄(自犯罪)까지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과 열국을 위한 구속사를 보면 하나님은 죄인들을 사용하여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역사를 이루신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에서 예수님까지 믿음의 족보를 보면 네 명의 여인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다말, 기생 라합, 룻
그리고 밧세바이다.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여 자식의 씨를 갖기 위해 근친상간의 죄를 범하고, 라합은 여리고성을 정탐한 두 명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숨겨준 여인인데 신분이 기생이며, 보아스와 결혼을 한 룻은 모압의 이방 여인으로 조상의 근본을 본다면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이후 롯의 두 딸이
아버지에게 술 취하게 하여 아들을 갖게 되는데 그들이 모압과 암몬 족속이다. 그리고 밧세바는 솔로몬의
어머니이지만 다윗과 불륜의 관계를 가진 여인이다.
상식으로, 믿음에
조상의 역사를 본다면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된 여인들을 구원의 역사 속에 기재되도록 하셨는지 이해가 어렵다.
하지만
하나님의 계획과 생각은 인간의 사고와는 다르며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는 죄인들에게 무조건적인 아가페 사랑을 절대적인 섭리로 보이신다.
예수님이 제사장으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처음으로 목격한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이다. 이 여인은 예수님으로부터 구원을 받기 이전에 일곱 귀신들렸던 여인이었다.
세상에서
버림받고 고립된 한 여인을 위해 예수님은 권능과 은혜로 치유와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제자 삼고 부활의 첫 증인으로 축복을 베푸셨다.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주신 중보자 제자장의 직분은 죄인들의 영혼을 사랑하고 그들을 구원하는 것인데
이것은 기독교의 가장 고귀한 진리이며 가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