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근 목사(시애틀 빌립보장로교회 담임)
어머니
오래 전 한국 MBC에서 제작한 <꼭 한번 만나고
싶다>라는 프로를 보며 느긋하게 시간을 보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음은 곧 맷돌을 짊어진 냥 무겁게 내려앉고 말았다. 비디오 내용이 그만큼 무거웠기 때문이다. 경주에서 살고 있다는 한 젊은 아주머니가 20여 년 전에 헤어진
어머니를 애타게 찾고 있었다.
7살 어린 시절에 어머니는 남편과 가난을 원망하며 어린 딸을 남겨 두고
집을 나가버렸다. 중학교에 다닐 때 잠깐 만나기는 했으나 또 다시 헤어지고 그렇게 긴 세월을 그리워만
하면서 천금 같은 세월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다 MBC 프로에 어머니를 찾아 달라고 의뢰하고 방송에 나왔던 것. 어머니 날이면 카네이션을 만들어 놓고 어머니 가슴에 달아드리고 싶었지만 가슴만 태웠다는 선한 얼굴을 가진 그
젊은 아주머니는 참으로 많은 감동을 줬다.
보통 사람 같으면 그렇게 어린 시절 자신을 버려두고 떠나
버린 그 어머니를 원망하고 반대로 어머니가 딸을 그렇게 찾았어도 만나 주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젊은 여성은 반대였다. 그렇게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어머니를
그렸지만 단 한 번도 어머니를 원망한 적이 없다고 단언했다.
방송국의 도움으로 같은 하늘 아래 살면서도 20년 동안이나 헤어져 있던 꿈에도 그리던 어머니를
만나 눈물로 상봉하는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어머니, 그 분은 우리가 사는 동안 단 한 순간도 잊을 수 없는 그런 소중한 분이다. 불효 막심하게도 머나먼 미국에 살면서 자주 문안조차 드리지 못한 죄책을 회개하며 어머니 생각에 전화를 들었다.
험악한 이 세상에서 팔순이 넘도록 건강하게 살아 계셔 주신 어머님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평생 자식 걱정에 젊음을 다 보내셨건만 최근 사랑하는 아들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 놓고 순간마다 가슴앓이를
하시는 어머님을 생각하면 정말로 가슴이 메인다. 무엇으로 남은 생애를 편안히 모실 수 있을는지?
언제나 마음은 간절하지만 뾰쪽한 수를 찾지 못한 채 오늘도 흐르는 세월만 바라보며 원망스럽기만 하다. 돈을 드려 기쁘게 해드릴까? 선물을 보내 기쁘게 해드릴까? 그 어느 것도 이 몸을 직접 보여 드리는 것보다 외로우신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도가 없을 것 같다.
하지만 그 또한 삶이라는 현실에 매여 마음대로 되는 일이 아니니 변명뿐인 내 자신의 작은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 막연하게나마 장수만 하신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그러한 안일한 마음을 가진지도 어언 수십 년이 지나고 있다. 결국 자식이란 마음에만 효를 묻는 그런 미련한 불효인가 보다.
TV서 모녀가 20년만의 극적인 상봉을 통해 두 손을 마주잡고
눈물로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그래도 살았으면 만날 수 있구나!”싶어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눈물로 그리워하나 더 이상 세상의 어른이 아닌 그런 자식들의 마음은 얼마나 더 죄스럽고 가슴
아플까? 생각해 보니 남에게 해 끼치지 않고 욕먹을 짓 하지 아니하며 건강하게 잘 살고 있는 것만으로도
효자 소리들을 수 있을 것 같아 작은 위로가 된다.
부모님께서 자식들에게 아무 것도 해주시지 않아도 고향 산천에서 건강하게 잘 계시기만 해도 자식들에겐 큰 힘이 되고 도움이 되듯이 말이다.
질병도 많고 사고도 많으며 정의도 없고 의리도 없는 이 혼란스런 세상에서 그래도 부모님은 최상의 스승이시며 자식들은 부모님께 가장 소중한
삶의 보람이다.
벚꽃이 저렇게도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우리 키우느라 굳어진 어머님의 굵은 손마디를 만지며 나들이라도 하고 싶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골목길 사진관에라도 들러 웃으면 빠진 치아로 소녀처럼 입을 가리우는 순전한 모습을 흑백으로라도
한 장 찍어 두고 싶다. 오랜 훗날 그 사진이라도 들여다보면 못다 해드린 효성에 작은 가책이라도 받을
수 있게 말이다.
“어머니 오래 사세요. 진짜로 어머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