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진
목사(루터교 은퇴/미주 크리스천문인협회원)
크리스마스
계절에 부치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일이나 그 분의 탄생 연도에 관해 전혀 언급을 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도 12월 25일을 주님의 성탄절로 지키고 있는 것은 고대 바벨론 종교에서
유래된 것인데 로마 가톨릭 교회가 이 이교적(異敎的)풍습을
받아 들여 기독교와 접목시킨 것을 다시 개신교회(Protestant Church)까지 흘러 들어온 것에서
기인한다.
그러다
보니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의 진정한 의미를 뒤로하고 축제와 절기 중의 하나로만 인식하며 보내는 경향이 많다. 많은 사람들은 크리스마스를 온가족이 함께 모이는 휴가로 여겨 맛있는 음식, 노래, 춤을 즐기고 서로와 교분을 두텁게 하기 위해 선물을 교환하는 좋은 기회로 여긴다. 물론 일가 친척들이 함께 모인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고, 다정한
사랑의 표현으로 주고받는 선물 또한 매우 의미가 깊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철이 되면 누구 누구에게 줄 선물 꾸러미를 들고 동분서주하는 사람들을 보게 되는데 정말로 지쳐 있고 선물을 준비하면서도 즐거움으로 하는
것이 아닌 경우도 보게 된다.
더욱이 미 연방수사국(FBI) 통계에
따르면 다른 달보다 12월에 범죄율이 더욱 늘어나고 교통사고도 더 많이 난다. 이것은 크리스마스의 근본적 의미에서 벗어난 물질주의와 자제(自制)의 결핍에서 오는 변질된 마음의 단면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탄생을 축하하는 것으로서의 크리스마스에 대한 종교적 의미를 회복시키도록 해야만 한다.
우리들에게는
피해갈 수 없어 꼭 마주치게 되는 것이 있다. 죽음이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원수라 칭하여 히브리서 10:30에서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했다.
이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시어 예수께서 십자가위에서 우리를 속죄해 주신 것이다. 우리에게
보여주신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이 자기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고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신것’이라고 했다 (요한 1서 4:9~10).
바로 이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이 ‘크리스마스(χρισμας)’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을 흑암에 처한 자를 마치 감옥 속에서 죄수를 끄집어내듯 우리를 죽음으로부터 끄집어낸 것이라고 했다(이사야
42:7). 끄집어내려면 반드시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에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는다’고 사도신조
첫머리에 나와 있다.
‘전능’을 원어로 ‘판토그라토르(παντωκρατωρ)’라고
하는데 히브리어로는 동사 ‘솨다드’라 하여 ‘뽑아 낸다’는 뜻을 지닌다. 부둣가의
배들이 밧줄로 꽁꽁 묶여 있듯 우리 또한 꼼짝 못하고 죄의 삯인 사망(로마서 6:23)에 묶여 있다.
하지만
바로 이 죽음의 노예가 되어 묶여 있었던 우리가 이제는 죽음에서 뽑혀 나와 자유인이 된 것이다(이사야 42:7). 그러기에 시편 기자는 “너는 행복 자로다 하나님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고 묻고 있다(신명기 33:29).
우리는 이 사랑을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고 받은 것이다. 이
은혜를 헬라어로 ‘카리스(χαρις)’라
하는데 동사 ‘카리토오(χαριτόω)’에서 왔다. ‘크게 베푼다’는
뜻으로 우리가 그냥 받은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Merry Christmas가
되는 까닭이 여기 있다.